종교/마니교

마니교의 창시자 마니

해길손 2011. 8. 29. 08:16

 

마니교의 창시자 마니

 

 

 

마니교의 창시자 마니(摩尼 / Mani, 216?~?276)는 메소포타미아의 Ktesiphon  부근에서 태어났다.

그의 아버지 파틱(Pattig) 혹은 파텍(Patteg)은 메대의 수도 악메다 출신으로,

메소포타미아의 엘크사이파에 가입하였고, 그의 아들 마니도 엘크사이파 사람들 사이에서

양육하였다. 마니는 만 4세부터 만 24세까지 엘크사이파 사람들 사이에 머물렀다.

 

만 24세, 곧, 주후 240년 경 마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독자적인 종교, 곧, 마니교를 창설하였고,

그의 부친 파틱도, 자기 아들이 창설한 새로운 종교의 신자가 되었다 한다.

 

마니는 주후 241년 경 인도 여행을 하였는데, 이 여행에서 인더스강 유역의 투란 지역 왕을

불교로부터 마니교로 개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.

 

인도 여행에서 마니는 불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, 그 가르침을 자기의 가르침 속에

혼합시켰다.

 

마니는 또 페르시아의 민족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도 자기의 가르침 속에

혼합시켰다.

 

마니는 주후 242년 경 메소포타미아로 돌아와, 사산조 페르시아의 제2대 왕

샤푸르 1세(재위 241?~270/273)로부터 마니교에 대한 포교 허가를 받았다.

 

사산조의 마니교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은 샤푸르 1세의 아들 호르미즈드 1세(재위 270/273~274) 때도

계속되었다.  

 

그러나, 호르미즈드 1세의 동생 바흐람 1세(재위 274~276)는 조로아스터교의 진흥을 위해

마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를 억압하였고, 이 과정에서 마니를 주후 276년 경 십자가형에

처해 죽였다.